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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선-대하, 숙신/제삼, 주신, 숙신, 여진

제삼(诸参), 주신(珠申), 숙신(肃慎), 여진(女真), 만주(满洲)

by 성수록 2024. 10. 23.

◉ 제삼(诸参), 주삼(主参), 실심(实沈)
<좌전>(춘추): "이전에 고신씨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알백, 작은 아들은 실심이라 불렀다. 같이 광림(산동성 곡부)에서 살고 있었는데 서로 맞지 않아 매일 간과 극을 들고 싸웠다. 후에 제 곡(고신씨. 혹은 고신씨 뒤를 이은 요尧)이 보다못해 알백을 상구(하남성 상구시)로 옮겨서 동남쪽 땅을 다스리게 하고(주진,主辰) 실심은 대하(산서성 태원시)로 보내 서쪽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주삼,主参). 당(唐尧)나라 사람들은  이것때문에(실심, 알백이 당요의 형제이기때문?) 하, 상에 복속하였다.

그 후세에 당숙우가 있었는데 무왕(주무왕)의 아내 읍강이 대숙(당숙우)을 임신했을 적 꿈에 천제가 나타나 말하길: "명에 따라 아들의 이름을 '우'로 하거라. '당(唐)'에 보내져 '제삼(诸参)'에 속하게 될테니 거기서 그의 자손들이 번성할것이다."라고 하였다. 애가 태여나니 손에 '우'자 무늬가 있으므로 이름을 '우'라 하였다. 후에 성왕(주무왕의 아들)이 당(임분시 익성、곡옥 일대)을 멸하고 대숙을 봉하였다. 때문에 삼(参)은 진성(晋星)이며 실심이 바로 삼신(参神)이다.

당숙우가 당의 땅에 봉 받고 제삼(诸参)에 속하게 되는데 이 제삼은 실심의 주삼(主参)을 말한다. 여기서 보면 주삼은 별자리에 따른 분야(分野)가 아닌 하나의 명칭이며 음이 같은 다른 한자로도 적을수 있었다. 당나라 사람들이 하, 상에 복속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제삼(诸参)에는 주삼(主参), 주진(主辰)이 다 포함된다. 또 알백과 실삼은 주선(朱宣)이라 불렸던 소호금천씨의 증손자들이다.  때문에 주진, 주삼, 제삼은 응당 금천씨의 주선에서 유래됐거나 혹은 그것을 계승했다고 보는게 맞다.

(※"옛 명칭들을 뜻이 아닌 발음으로 봐야 되는 이유"편을 참고)


◉ 주신(珠申)
<만주원류고>(청): "우리 나라가 일어날때 옛 이름은 만주(满珠)로 소속되여 있는 곳을 '주신(珠申)'이라 불렀다. 후에 그냥 만주(满珠)로 불렀는데 한자로 전해 내려오며 글자가 바뀌여 만주(满洲)로 되였다. 사실 옛 숙신(肃慎)으로 주신(珠申)은 음이 바뀐것이다. "
<만주원류고>(청): "나라 초에 옛적에 '주신'에 소속되였었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숙신'이 음이 바뀐것이다. 한인(汉人)들이 그 연유를 몰라 쪼개여 둘로 하였다. 직신(稷慎), 식신(息慎)도 사실 다 같은것이다."
<만주원류고>(청): "대금국지에: '금나라의 본래 이름이 주리진(우리 나라의 옛 명칭이 '만주'이고 소속 된 곳을 '주신'이라 하였는데 '주리진[珠里真]과 음이 가깝다. 약간의 발음 차이가 있지만 모두 '숙신'에서 온 말이다.)인데 후에 바뀌여 '여진(女真), 혹은 '려진(虑真)'이라 불렀다.'라고 적혀있다."


◉ 숙신(肃慎)
식신(息慎), 직신(稷慎)으로도 적는다.
<죽서기년>(춘추전국): "제순 (帝舜)   25년, 숙신씨가 내조하였다."  정현(동한 학자) 주석: '식신'은 동북이(东北夷) 중의 숙신을 말한다. 우(虞), 하(夏) 이래 동북의 큰 나라이다.
<죽서기년>(춘추전국): "주무왕 15년, 숙신씨가 래빈하였다."
<상서>(선진, 공자가 정리): " 성왕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이 와서 축하하였다. 왕의 신하 영백(荣伯)이 <회숙신지명(贿肃慎之命)>이라고 적었다."
<좌전>(춘추): "숙신, 연(燕), 박(亳)은 우리(노,鲁)의 북쪽 땅이다."
<산해경>(한): "대황의 가운데 불함(不咸)이란 산이 있는데 숙신의 나라가 있다."
<사기>(한): "산융(山戎), 발(发), 식신......."
<후한서>(남조송): "강왕(康王, 주강왕) 때에 숙신과 내왕을 회복하였다."

고숙신에 대한 기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서들에는 숙신이 어느 방향에 있다는것만 기록하였고 구체적인 위치나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거리 같은것은 기록되여 있지 않다. 때문에 고숙신이 대체 어느곳에 위치하였었는지는 정확히 모르며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들이 숙사씨(夙沙氏, "치우와 숙사씨 그리고 치염(治盐)"편에 소개되여 있음)로 아주 오래전에 산동반도에서 살았었는데 발해만을 에돌아서거나 혹은 봉래에서 대련까지 바다를 건너서 동북으로 이주한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이들이 요서와 하북 북부의 연산산맥(燕山山脉) 일대에서 살았는데 나중에 송화강 유역과 흑룡강 중하류 유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하가점(夏家店, 내몽골 적봉시) 하층, 상층 문화에 모두 숙신의 문화가 존재한다고 보고있다.

혹은 애초에 송화강 상류에서 살았었는데 나중에 목단강 유역과 흑룡강 중하류 유역으로 이주하였다고 보는 이도 있다.

 

 

◉ 여진(女真), 만주(满洲)
여진은 3천여년전의 숙신(肃慎)에서 기원하였는데 한(汉, 기원전202년~220년)에서 진(晋, 266년~420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읍루(挹娄)라 불렀고 남북조(南北朝, 420년-589년) 시기에는 물길(勿吉)이라 불렀으며 수(隋, 581년~618년)에서 당(唐, 618년~907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말갈(靺鞨)이라 불렀다. 

"여진"이란 이름은 최초로 당나라 초기에 보이는데 그 후 여진(虑真), 주선(朱先), 주이진(珠尔真), 주리진(朱理真), 제신(诸申), 주리차특(朱里扯特). 주아차척(主儿扯惕), 주아철척(主儿彻惕), 졸아찰대(拙儿察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요(辽)나라 때에는 흥종 야율종진(耶律宗真)의 진(真)자를 피하여 여직(女直)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여진은 본래 주리진(朱里真)으로 적었었는데 여진어 발음으로 제신(诸申, zhu shen, 주선)이라 하였다. 또 여진, 주선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모두 숙신(肃慎, su shen, 수선)이란 음이 변한것이다. 때문에 여진은 바로 숙신에서 기원하였으며 또 안차골(安车骨, 말갈 7부중 하나)에서는 여진의 뜻이 금(金)이라고도 하였다. 

명나라 중, 후기부터 중원에서 여진을 달단(鞑靼), 달로(鞑虏), 북로(北虏) 등으로 불렀으며 그 병사들을 로병(虏兵)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후금 천총(天聪) 7년(1635년) 10월 13일, 황태극(皇太极)이 명을 내려 여진이란 이름을 만주(满洲)로 고치였다.

[l-댜-제삼,주진,주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