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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부락-유웅씨/구려왕 치우

치우와 숙사씨 그리고 치염(治盐)

by 성수록 2024. 3. 23.

◉치우(蚩尤)

치우는 묘만(苗蛮), 구려(九黎)족의 수령이다. 염제에 불복하여 풍백, 우사, 과부(夸父)등을 거느리고 군사를 일으켰다. 형제가 80명이였는데 짐승의 몸에 동의 머리 철의 이마를 가졌고 모래를 먹었는데 매우 강하였다. 염제 유망(榆罔)이 대적하지 못하여 황제가 부대를 이끌고 치우를 치게 되였다. 황제가 응룡(应龙)을 기주(冀州)의 들판에 보내 진공하게 하였는데 결과는 대패하였다.

그후 연속 패하자 황제는 부대를 이끌고 태산(泰山)으로 퇴각하였다. 거기서 새의 형상을 한 구천현녀(九天玄女)를 만나는데 그는 황제에게 "현녀전법"을 전수하였으며 곤륜산에서 가뭄의 신 녀발(女魃)을 모셔와 전쟁을 지원하게 하였다. 또 사람을 보내 동해밖의 칠천리에 있는 류파산(流波山)에 있는 괴수 "기(夔)"의 껍질을 벗겨와 북을 만들어 사방을 떨게 하였다.

황제는 태산에서 나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치우와 격전을 벌리였다. 치열한 접전끝에 응룡이 치우의 진영에 돌격해 치우를 잡은 후 황제가 칼을 씌워 여산의 언덕(黎山之丘)에서 처형하였다. 그리하여 후세에 이곳을 "해주(解州)"라 하였는데 여기의 못에서 소금이 나고 그 소금은 붉은 색이며 그 지방 사람들은 치우의 피가 변하여 된것이라고 한다.

황제는 치우의 반란에 참여한 묘만 구려족들에 대해 귀순을 원하는 자들은 "추도(邹屠, 산동성 빈주시 추평시<邹平市>)"의 땅에 이주시켜 살게 하였고 귀순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북쪽 땅으로 도망쳤다.

※소도(苏涂): <삼국지·위서·동이전>: "전하는 바에 의하며 삼한(三韩)에 소도라고 부르는 별다른 읍이 있는데 북과 방울을 매단 장대를 세워 귀신한테 제사 지낸다. 소도는 신성한 곳이여서 만약 범죄자가 그 곳에 숨어들면 그를 잡을수가 없었다. 소도는 응당 추도에서 기원한것이다."

[f-랴-추도]

◉치우에 대한 역사 기록

<일주서·사서>: "판천씨가 독록(独鹿)으로 옮겨 거주하였는데 제후들이 배반하여 판천씨는 망하였다."

<사기•오제본기>: "제후들이 서로 싸웠는데 치우가 제일 포악하여 벌할수가 없었다. 황제가 군대와 제후들을 거느리고 탁록(涿鹿)의 들에서 치우와 싸워 드디여 잡아 죽이니 제후들이 헌원을 천자로 모시였다." <대대례기>(서한 시기)의 기록은 <사기•오제본기>와 내용이 조금 다른데 황제가 염제와 판천에서 싸운 내용 외에는 치우와 탁록에서 싸웠다는 내용은 없다.

<파사론>: "황제의 시기에 치우가 동의 머리, 철의 이마로 천하를 어지럽히니 황제와 판천에서 싸웠다. (황제)제왕의 자리에 오르니 치우가 그 명을 거역하고 다시 탁록의 들에서 싸우니 무릇 오십이년이 걸렸다.

<사기정의>: "구려의 왕은 호가 치우이다."

<로사·치우전>: "판천씨, 치우는 성이 강씨이며 염제의 후손이다."

◉치우가 태여난 곳

<귀장·일문>: "치우는 양수(羊水)에서 나왔는데 여덟개의 팔뚝, 여덟개의 발과 갈라진 머리를 가졌다. 구작(九淖, 혹은 구뇨)에서 올라 공상(空桑)을 토벌하니 황제가 청구(青丘)에서 죽이였다."

1. 양수는 양하(洋河)라고도 하는데 산서성과 내몽골자치구에서 발원한다. 상류는 남양하, 서양하, 동양하로 나뉘며 장가구시 회안현(怀安县) 부근에서 합쳐지는데 거기서부터 양하라 부른다. 영정하(永定河)의 지류중 하나이다. 옛 서적들의 기록들과 대조하여 보면 치우가 탄생한곳은 내몽골자치구의 흥화현(兴和县)이거나 하북성 장가구시의 회안현 일대일 가능성이 있다.

2.<독사방여기요>, <광여기>, <기보통지> 등에는 "치우가 적성에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적성은 현재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县)에 있다.

※청구(青丘). <원화군현지>: "제경공(齐景公)은 말이 천필있었는데 청구에서 밭을 하였다. " 때문에 청구를 "천승(千乘)"이라고 불렀는데 천승은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 고청현(高青县)을 말한다.

[f-러-치우 출생지 무덤]

◉치우의 무덤

전하는데 의하며 황제가 치우의 몸과 머리를 따로 묻었다고 하였다. 치우의 무덤 하나는 산동성 동양현(东羊县)에 있고 팔다리 무덤은 산동성 거야현(巨野县)에 있다.

◉치(蚩)씨

희소한 성씨로 현재 강소성 상주시 무진구(武进区)에 이 성이 있으며 운남성 노강 율율족자치주(怒江傈僳族自治州) 노수시(泸水市), 운남성 리강시 화평현(华坪县)과 사천성 반지화시 염변현(盐边县)의 율율족들이 이 성을 갖고 있다.

[f-려-치씨 성]

◉숙사씨(夙沙氏)

숙사(宿沙)라고도 불리는데 숙사국의 수령 구자(瞿子) 역시 숙사씨(夙沙氏), 또는 숙사구자(宿沙瞿子)라고도 한다. 숙사의 활동줌심은 발해(渤海) 래주만(莱州湾) 일대이다.

<세본>: "숙사는 소금을 끓이였다."

<천자문>: "숙사구자는 바다를 끓이였다."

<노연자>: "숙사구자는 소금을 잘 끓이였다."

<죽서기년>: "그때에 제후 숙사씨가 반란을 일으키고 제명(帝命)을 따르지 않아 그 신하 기문(箕文)이 간하였으나 죽임을 당하였다. 염제가 그 행덕을 더 바르게 세우니 숙사의 백성들이 자신의 왕을 공격하고 (염제)에게 와서 귀속하였다."

<삼황본기>: "초목의 맛을 보아 책을 만들어 치료를 하였다(약효에 대해 관찰하였는데 하루에 칠십여가지 독을 맛보았다.). 시장을 만들어 천하의 물건이 교역이 되였는데 모두가 요구하는 것을 얻을수 있었다. 숙사씨가 반란을 일으켜 곡부로 옮겼다가 나중에 다향(茶乡)에서 죽었다. 140년을 재위하였다. 그 뒤를 이어 임괴(临魁) 등 여섯 임금이 다스리다가 유망에 이르러 치우(蚩尤)의 난이 일어났는데 평정할수 없었어 공손헌원이 있어 사로잡을수가 있었다."

산서성 안읍(安邑, 산서성 운성<运城> 동쪽)에 염종묘(盐宗庙)가 있는데 소금신 숙사씨를 제사 지낸다. 안읍의 소금은 못의 소금으로 숙사씨가 끓여서 만든 바다 소금이 아니다. 때문에 이 소금의 신은 응당 치우여야 맞다.

[f-로-소금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