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조선의 분열-고신씨/천지개벽의 신-반고

반고(盘古)와 탕고씨(汤古氏)

by 성수록 2024. 3. 24.

◉ 반고(盘古)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 시기에는 반고에 대한 기록이 없다. 삼국시기의 오나라(吴国, 기원전 12세기~기원전 473년)의 서정(徐整)이 편찬한 <삼오력기>에 처음 반고가 언급되였다.

동진(东晋, 317년~420년) 때의 <원시상진중선기>: "천지를 개벽한 반고진인은 스스로 원시천왕이라고 불렀다. 천지가 만들어진후 갑자기 돌틈에 있는 피못에서 태원옥녀가 태여났는데 태원성모라고 불렀다. 원시천왕과 태원성모가 기로 통하여 정을 맺어 부상대제(扶桑大帝) 동왕공과 서왕모를 낳았고 또다시 천황(天皇) 형제 열둘을 낳았다. 천황이 지황을 낳고 지황이 인황을 낳았으며 복희와 신농 등 오제(五帝)는 그 후예이다. 반고가 천지개벽한 후에 고월족(古越族)들이 곤륜산(昆仑山)에 나타났다. 고월족의 수령을 천황씨라고 하며 용(龙)을 토템으로 하였다.

◉ 반(盘)씨

반씨 중 한 갈래는 반고씨에서 온다. 반고씨의 후예들이 반고의 이름을 성씨로 하였다.

<술이기>: "반고씨의 부부로부터 음양이 시작되였으며 천지만물의 조상이다. 지금의 남해 중에 반고국이 있는데 반고를 성으로 쓴다." 또 말하길 "지금의 남해에 반고묘가 있는데 삼백여리가 되고 여기서 반고씨의 혼을 제사지낸다고 한다. " 반고묘는 광서장족차치구의 래빈시(来宾市)에 있다.

반씨의 분포.

광서장족차치구 래빈(来宾), 흔성(忻城), 상림(上林县), 금수요족자치현(金秀瑶族自治县), 용현(容县), 박백현(博白县) 등에 분포되여있다.

광동성 고주시 심진진(深镇镇), 무명시 전백현 라갱진 만갱촌(万坑村), 신흥현(新兴县), 양동현(阳东县) 등에 분포되여있다.

하남성 회양현(淮阳县)에도 분포되여있다.

[k-샤-반씨 분포]

◉ 탕고씨(汤古氏)

최근 학자들은 "반호(盘瓠)"가 바로 "반고(盘古)"를 순한 음으로 적은것이라고 인정한다. 또 "반(盘)"자와 "탕(汤)"자도 서로 뜻이 같고 빌려 쓸수가 있었다. 때문에 반호씨를 탕고씨의 숭일(崇日)부족으로 볼수 있고 반호씨를 탕씨라고도 불렀었다. 반호와 상녀(商女, 辛女, 제 곡의 딸)가 아들 열명에 딸 세명을 낳았는데 제 곡이 외손자와 외손녀에게 탕고씨(汤古氏), 탕수씨(汤水氏), 탕목씨(汤木氏), 탕반씨(汤盘氏), 탕원씨(汤元氏), 반씨(盘氏), 착씨(错氏), 루씨(蝼氏), 의질씨(蚁垤氏), 도양씨(屠羊氏), 공양씨(公羊氏), 여궁씨(女宫氏), 돈구씨(顿丘氏) 등 성을 하사하였고 이를 "탕조(汤厝, 복건성 남부)의 십삼성"이라고 한다. 또 역사상에서 이들을 반씨 기원의 정종이라고 한다.

반고씨의 후예 자손 중 일어십일족(日御十日族) 탕씨의 주체였던 탕반씨(汤盘氏)는 후에 탕씨와 반씨로 갈라졌다.

◉ 탕고와 당고(唐古)

탕고씨는 천황(天皇)의 별호 였고 천황이 천산(天山)의 탕곡(汤谷)에 나라를 세웠다. 또 탕인(偒人, 복족<濮族>)의 우두머리로 십일족(十日族)의 시조였다. 이들의 토템은 천견(天犬)으로 태양을 상징했다.

탕곡으로 불리는 곳이 여러 곳인데 탕곡에서 살아 탕고씨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탕고씨가 살면서 지명이 탕곡으로 된 곳도 있다. "탕(汤)"과 "당(唐)"이 음이 서로 같아 통용하였는데 "탕고"를 "당고(唐古)"로 적기도 하였다. 탕고씨들의 토템은 나중에 바뀌여 까마귀로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태양을 대표하는 삼족오이다.

한나라때의 돌에 새겨 그린 (예사구일<羿射九日>)에는 부상(扶桑) 신수위에 앉아있는 삼족오를 볼수 있다. <산해경>에 따르면 희화(羲和)는 제 준(俊)의 아내였는데 십일(十日, 열명의 해)를 낳았다. 물 가운데의 탕곡이란 곳에서 살며 십일을 목욕시켰는데 탕곡위에는 부상이라는 큰 나무가 있고 아홉 해는 아랫 가지에 하나의 해는 윗 가지에서 살았다. 후예(后羿)가 아홉 해를 쏴 떨구니 해 하나만 남게 되였다.

진한(秦汉) 이전에 탕(汤)씨들은 하북 일대의 중산군(中山郡, 하북성 정주시<定州市>)과 범양군(范阳郡, 베이징, 천진, 탁주)에서 번성한다. 후에 중원이 전쟁으로 난잡해지자 대거 이동하는데 한 갈래는 발해만에 있는 당고(溏沽, 塘沽, 천진시 빈해신구<滨海新区>)에 자리잡는다.

그 후에도 한나라와 당나라의 전쟁때문에 장백산과 흑룡강 유역으로 이주하며 이들이 나중에 발해국의 명망있는 가족으로 된다. 탕고씨(汤古氏), 탕무씨(汤务氏), 탕고랍씨(汤古拉氏), 탕씨(汤氏)들은 만족(满族, 여진인)들이 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우며 후에 성을 한자로 고쳐 당(唐)씨, 탕(汤)씨, 양(杨)씨로 하였다.

[k-서-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