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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부락-유웅씨/탁록, 구려, 촉산

탁록, 구려, 촉산

by 성수록 2024. 3. 23.

◉탁록(涿鹿)에 대한 역사 기록

<귀장>: "(치우)는 양수에서 나왔는데 ... ... ... 구작(九淖, 혹은 구뇨)에서 올라 공상을 토벌하였는데 황제가 청구에서 죽이였다."

서주(西周) 이래의 서적들에는 치우가 정벌한 "공상(空桑)"을 대부분 "궁상((穷桑)으로 적었으며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 지역을 가르킨다. 하지만 "구작"은 옛 황하가 아홉 갈래로 갈라져 바다로 흘러드는 발해의 서남쪽을 말하는데 산동성 북부와 하북평원 동북부에 속한다. <귀장>을 비롯한 극히 적은 옛 서적들에서 옛 황하 하류의 아홉갈래 물길을 "구작"이라고 하였고 기타 서적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일주서>: "치우가 (적)제를 쫓아 탁록의 언덕에서 싸우니 아홉 구석은 남은 곳이 없었다. 적제(赤帝)가 크게 놀라 황제한테 알려 치우를 다스리게 하니 중기(中冀)에서 죽이였다."

<주서>: "판천씨(阪泉氏)가 독록(独鹿)에 옮겨 살았다."

<손빈병법>: "이전에 신융(神戎)이 부수(斧遂)에서 싸우고 황제는 촉록(蜀禄)에서 싸웠으며 요는 공공(共工)을 정벌하였다." 여기서 "촉록(蜀禄)"은 또 "촉록(蜀鹿)"으로도 적는다.

<슬사총담>: "<이속·제요비>에 '그 후에 요(尧)가 촉록(蜀鹿)에서 명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촉록은 독록(独鹿)을 다르게 쓴 것이며 곧 탁록이다. 옛날에는 탁(涿)과 독(独)은 서로 통하는 글자였다." 독록은 속루(属镂)라고도 적는데 속루는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자서(子胥)에게 준 검 이름이기도 하다.

◉탁록의 영역

독록(独鹿), 하북성 보정시 래원현(涞源县).

탁록(浊鹿), 탁성(浊城) 또는 청양성(清阳城), 하남성 초작시 무척현(武陟县).

탁록(涿鹿), 1.강소성 서주시 동산구(铜山区).

2. 하북성 보정시 탁주시(涿州市).

3.하북성 장가구시 탁록현(涿鹿县).

◉ 판천(阪泉)의 영역

1.산서성 태원시 양곡현(阳曲县). 옛날에 한산(汉山)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2.하북성 장가구시 탁록현 동남쪽.

3.산서성 운성시(运城市) 남쪽.

4.베이징시 연경구 장산영진(张山营镇)의 상(上)판천과 하(下)판천.

[f-먀-탁록,판천의 영역]

◉구려(九黎)

<개벽연의>: "제(소호,少昊)가 '구려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신하 구룡(勾龙)이 아뢰길 '신이 알건대 구려는 인황씨(人皇氏) 때의 촉산씨(蜀山氏)의 후예이며 촉(蜀)에서 살고 제후로 봉하였는데 형제는 아홉이다."

<논어>: "동쪽에 구이(九夷)가 있으니 첫째는 현도(玄菟), 둘째는 락랑(乐浪), 셋째는 고려(高骊), 넷째는 만식(满饰), 다섯째는 부경(凫更), 여섯째는 색가(索家), 일곱째는 동도(东屠), 여덟째는 왜인(倭人), 아홉째는 천비天鄙)이다."

<후한서>: "동이는 아홉 종이 있는데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黄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风夷), 양이(阳夷) 이다.

◉ 촉산씨(蜀山氏)

<세본>등 선진(先秦) 시대의 고적에 모두 "촉산씨"를 언급하였다. <대대례기>, <사기>에도 모두 "촉산씨"란 이름이 보인다. 이런 책들에는 모두 "촉산씨의 여자 창복(昌濮)"을 언급하는데 "탁자(浊子)"라고 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촉산씨가 나타난 시기는 황제 시대였다.

촉(蜀)은 촉(蠋), 탁(镯), 탁(浊)으로도 적는다. 작자(淖子, 혹은 뇨자)는 곧 촉산자(蜀山子)이다. 작자는 또 추자(娵訾)라고도 적는데 제곡(帝喾)의 차비(次妃)이다.

<화양국지>에는: "촉(蜀)의 선조는 인황(人皇) 시기에 나타났다. 황제가 아들 창의(昌意)에게 촉산씨를 취하게 하고 그 후대들을 그대로 봉하게 되였다. 인황씨는 형마산(刑马山) 제지의 나라(提地之国)에서 일어났다."고 씌여져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형마산 제지의 나라는 감숙성 천수시 맥적구 백양진(伯阳镇)으로 추정된다.

<사기집해>: "공안국(孔安国)이 말하길 '동이(东夷)의 땅을 우이(隅夷)라 한다. 해는 양곡(崵谷)에서 나온다. 희중(羲仲)은 동방을 다스리는 관리이다."

<춘추명력서>: "인황은 양곡(暘谷, 해가 뜨는 곳)에서 나왔다. 구하(九河)를 나누었다." 양곡(旸谷)은 또 양곡(崵谷)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양곡으로 알려진 산동성 일조시 량성진유적(两城镇遗址)을 인황의 유적으로 보는 이도 있다.

상고의 구택(九泽, 九淖<구작 혹은 구뇨>)인 하택(菏泽), 뢰택(雷泽), 대야택(大野泽), 맹저택(孟渚泽) 등은 모두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菏泽市) 경내에 있다.

독록(独鹿) 역시 동북이(东北夷) 였는데 촉록(蜀鹿), 탁록(涿鹿)으로도 불렸고 속루(属镂)도 같은 말이였다. 탁록 즉 촉록, 촉용(烛龙), 구작(九淖, 혹은 구뇨) 등은 모두 옛 촉인(蜀人)들을 말한다.

◉옛 촉(蜀)의 활동 영역

<화양국지>: "촉(蜀)이 나라를 세운건 인황에서 비롯하였다." 또 "인황은 형제가 아홉이고 구주(九州)를 나누어 다스리였다." 또 "인황이 중주(中州)에 거주하며 팔주를 다스리였다."

<개벽연의>: "제(소호,少昊)가 '구려(九黎)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신하 구룡(勾龙)이 아뢰길 '신이 알건대 구려는 인황씨(人皇氏) 때의 촉산씨(蜀山氏)의 후예이며 촉(蜀)에서 살고 제후로 봉하였는데 형제는 아홉이다."

 

<화양국지>와 <개벽연의>를 보면 인황도 아홉 형제 중 한명이고 중주에 거주하였고 나머지 여덟 형제는 각각 나머지 여덟개 주에 제후로 봉하여졌다. 이에 근거해 구주(九州)로 나뉜 옛 촉(蜀)의 활동 영역을 유추해 볼수 있다. 북으로는 유릉(幽陵, 숙신<肃慎>, 탁록<涿鹿>)에 이르고 동으로는 번목(蹯木, 제성<诸城>, 교주<胶州>)에 이르고 남으로는 교지(交趾, 주산<舟山>, 제기<诸暨>)에 이르고 서남으로 사천성 미산시(眉山市, 촉산<蜀山>)에 이르고 서로는 류사(流沙, 감숙성 주천시 숙주구<肃州区>)에 이르렀다. 여기서 숙신, 탁록, 제성, 교지, 주산, 제기, 촉산, 숙주 등은 모두 "촉(蜀)"에서 나온 말이다.

1.산동성 문상현 남왕진(南旺镇) 동남부에 촉산호(蜀山湖)가 있다.

2.사천성 미산시 홍아현(洪雅县) 경내에 촉산(蜀山)이 있다. 와옥산(瓦屋山)이라고도 한다. 촉은 사천성(四川省)의 약칭이다.

3.안휘성 합비시 려양구(庐阳区)의 촉산호(蜀山湖)와 합비시 촉산구의 촉산(蜀山)이 있다.

[f-머-촉산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