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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분열-고신씨/청양씨 제 지와 요임금

제 지와 당요(唐尧), 진(晋)나라

by 성수록 2024. 3. 24.

◉ 제 지(挚)

성은 희(姬)씨이고 이름은 지(挚)이며 호는 청양씨(青阳氏)이다. 제 곡(喾)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추자씨(娵訾氏)의 여자 "상의"이다. 제 곡이 죽자 제위를 물려받고 여전히 박(亳)을 도읍으로 하였다. 9년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동생 요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요가 등극후 그를 고신(高辛)에 봉하였다.

<사기>: "제 곡이 진봉씨의 여자를 취하여 방훈을 낳았고 추자씨의 여자를 취하여 지를 낳았다. 제 곡이 죽자 지가 이어받았다. 제 지가 잘하지 못하여 동생 방훈이 이어받았는데 바로 제 요이다."

<제왕세기>: "제 지의 어머니는 제 곡의 네명의 아내 중 서열이 마지막이였지만 아들 지는 형제 중 맏이였다. 때문에 제위를 물려받았고 이복동생인 방훈을 당후(唐侯)로 봉하였다. 지가 제위한지 9년 능력이 딸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대신 당후 요는 백성을 사랑하고 잘 다스려 그 덕이 천하에 알려졌다. 지가 스스로 물러나자 당후가 천명을 받들어 제위를 이어받고 지를 고신에 봉하였다."

◉ 청양씨(青阳氏)

1.소호 금천씨(金天氏), 성이 기(己)씨이고 이름은 지(挚, 질<质>, 지<鸷>)이며 또 청양씨라고도 한다. 황제의 아들이다.

2.제 지(挚), 성이 희(姬)씨이고 이름은 지(挚)이며 호는 청양씨이다. 제 곡의 장자이다.

소호 금천씨가 청양씨라는 역사기록은 많으며 제 지가 청양씨라는 역사 기록은 많치 않다. 또 금천씨와 제 지가 같은 인물이라는 견해도 있다.

◉ 당요(唐尧)

당요의 성은 기(祁, 耆. 또는 이기<伊祁>)씨이며 이름은 방훈(放勋)이고 호는 도당씨(陶唐氏)이다. 황제의 증손이자 제 곡(喾)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도(庆都)이며 진봉(陈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 지(摰)가 재위하여 처음에 요를 도(陶, 산동성 하택시 정도현<定陶县>)에 봉하였다가 후에 당(唐, 하북성 보정시 당현<唐县>)으로 옮겨 봉하였기에 도당씨라고 불렀다. 제 지가 물러나자 요가 대신하여 제위에 올라 도읍을 평양(平阳)에 정하였다.

<제왕세기>: "전하는데 의하면 제 요는 이기(伊祁, '이기'는 본래 염제의 호로 '임강<任姜>'이다.)산(요산<尧山>이라고도 한다. 하북성 보정시 순평현<顺平县>)에서 태여났으므로 이기를 성으로 하였다."

[k-랴-도,당,요산]

진봉씨의 여자 경도는 제 곡의 세번째 비이며 제 요의 어머니이다. 대제(大帝)의 딸로 태여났는데 제 곡이 비로 들인 후 요를 낳았다. 지금의 복양현 경조촌(庆祖村)의 본래 이름이 경도이며 여기에 원래 경도묘도 있었고 경도가 여기에서 살았다고도 전해진다.

◉ 고당국(古唐国) 수도 평양(平阳)

요가 처음에는 도, 나중에는 당에 봉하여졌는데 제 지를 대신해 제위에 오른 후 평양을 도읍으로 하고 고당국을 세웠다. 평양의 위치에 대해선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1.임분(临汾).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 홍동현(洪洞县) 동남쪽.

<제왕세기>: "요의 수도 평양은 바로 지금의 임분이다."

<우공>: "천하를 구주로 나누었는데 평양은 기주(冀州, 산서성, 하북성 서북부, 하남성 북부)의 땅에 있었다."

오랫동안의 고고학 결과로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 도사유적(陶寺遗址)이 가능하게 옛 요의 수도 평양일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태원(太原).

<일주서·사기해>: "옛적에 서하(西夏)가 어질어 병사를 두지않고 성곽을 수리하지 않으며 무사를 쓰지 않고 온화하면 상을 주고 재물에 빠지면 상을 주지 않으니(?) 당씨(唐氏)가 토벌하니 성곽이 지켜주지 못하고 무사가 쓸모없으니 서하는 망하였다." 어떤이는 여기서 언급한 서하는 실심(实沈)의 대하(大夏)를 말하고 당씨는 당요(唐尧)를 말하며 당요가 실심을 토벌하고 수도를 실심의 터 평양(平阳, 산서성 태원시)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또 어떤이는 상탕(商汤, 은허의 갑골문에서는 성<成>, 당<唐>이라 적고 종주<宗周>의 갑골문과 서주의 금문에서는 성당<成唐>으로 적었다.)이 하(夏)를 토벌한것을 말한다고 한다.

[k-러-당수도 평양]

◉ 대홍수(大洪水)

황제 시대가 끝나고 요의 시대에 이르러 도처에 홍수가 넘쳐흘러 곤(鲧, 우<禹>의 아버지)을 천거하여 치수하게 하였다.

<상서·요전>: "요의 때에 홍수로 인한 재해가 심하였다."

<환우통지>: "요의 때에 상류의 물이 넘쳐 갈 곳이 없어 사처로 흘러내렸다."

<진승수략>: "요의 때에 홍수의 해가 심하였는데 수도까지 미치였다."

◉ 당과 진(晋)

<좌전>: "무왕((周武王)의 아내 읍강(邑姜)이 태숙(太叔, 당숙우<唐叔虞>, 진<晋>나라 시조)을 임신하였을 때 꿈에 천제가 나타나 말하길: "아들의 이름을 우(虞)로 하여라. 당(唐)에 보내질것이니 제삼(诸参)에 속하여 거기서 자손들이 번성할것이다."라고 했는데 아이를 낳으니 손에 우(虞)자가 그려져 있어 그 명을 따랐다. 성왕(成王, 당숙우의 형)이 당을 멸하고 숙우를 그 곳에 봉하였다."

위의 <좌전>에 기록 된 내용은 대하(大夏)는 제 곡의 아들 실심의 땅이고 상구(商丘) 역시 제 곡의 아들 알백의 땅이였기에 당인(唐人, 요가 세운 당나라의 후손)들은 (제 곡의 아들들의 나라인) 하, 상의 신하로 귀속되여 종사하였다. 서주 때에 이르러 주성왕이 동생 숙우를 당에 봉하였는데 당의 경내에 진수(晋水)가 있어 숙우의 아들 섭부(燮父)가 "당"을 "진(晋)"으로 고치였다.

◉ 요의 릉(尧陵)

말년에 요가 제위에서 물러나고 순(舜)이 제위하였다. 요는 뢰택(雷泽, 산동성 하택<菏泽>)에서 병으로 사망하였고 곡림(谷林, 산동 견성<鄄城>)에 묻혔다. 현존하는 요의 릉은 두 곳이다. 하나는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 서남 7.5킬로에 있는 부춘향(富春乡)에 있다. 다른 하나는 산서성 임분시 요두구 태양진(大阳镇)에 있다.

[k-려-요의 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