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잔여국-선우,북적,흉노/선우, 비여, 고, 중산, 구유

선우국(鲜虞国), 중산국(中山国),비국(肥国), 고국(鼓国), 구유국(仇犹国)

by 성수록 2024. 3. 25.

◉ 선우국(鲜虞国), 비국(肥国), 고국(鼓国)

주공(周公)이 제 2차로 상나라를 멸망시키면서 패국(邶国, 안양시<安阳市>)도 역시 멸망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석가장(石家庄) 일대까지는 그 세력이 닿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곳은 북적(北狄)의 땅이였다. 산서성 오대산(五台山)의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호타하로 흘러드는 청수하(清水河)란 강이 있는데 옛날에 선우수(鲜虞水)라고 불렀다. 백적(白狄)은 이 선우수 연안에서 발전하였기에 선우족이라 불렀다 대략 서주(西周) 중, 후기부터 석가장 일대에서 번성하여 점차 패국의 땅까지 차지하였다.

이들은 신시(新市,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 신성포촌<新城铺村>)를 중심으로 선우국(鲜虞国)을 세웠고 또 고성(藁城, 하북성 석가장시 고성구<藁城区>) 서부에 비국(肥国)을 세웠으며 진주(晋州, 하북성 석가장시 진주시<晋州市>)에 고국(鼓国)을 세웠다. 세 나라는 연합하여 남쪽의 나라들과 대립하였다.

[o-갸-선우,비여,고위치]

기원전636년, 국외에서 19년 동안 떠돌던 진문공(晋文公, 중이<重耳>)가 나라로 돌아가 즉위하였다. 그 후로부터 진나라는 강대해지기 시작하여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남쪽으로 황하를 넘고 동쪽으로 하북성 남부에 미치게 되였다.

기원전 530년 8월, 진나라는 비국을 멸망하고 비국의 왕 비자(肥子) 면고(绵皋)를 포로하였다.

기원전 527년, 순오(荀吴, 진나라 장군)가 명령을 받고 선우를 공격하려 하였다. 그는 우선 고국을 포위하였는데 고국은 량식이 고갈되여 저항하지 못하고 순오한테 투항하였다.

기원전 505년, 선우국을 포위하였으나 진나라 내부에 정변이 발생하였다. 진나라를 보좌하던 여섯가문의 모순이 점차 심해져 진정공(晋定公)과 지씨(智氏), 조씨(赵氏), 한씨(韩氏), 위씨(魏氏) 등 가문과 연합하여 범씨(范氏), 순씨(荀氏)와 대립하고 있었다.

기원전 489년, 주경왕(周敬王) 삼십일년에 조앙(赵鞅, 진나라 조씨가문)이 선우를 들이쳐 선우도 멸망하였다.

◉ 비여(肥如)

<좌전>: "소공(昭公, 로나라 왕)십이년(기원전 530년), 진나라 순오가 제나라로 가는것처럼 꾸며 선우국에 길을 빌려 석양(昔阳县, 산서성 진중시)에 들어갔다. 가을 팔월 임오에 비(肥)를 멸망시키고 비자 면고를 잡아 돌아갔다. 진이 선우를 정벌한것은 비와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춘추좌전집해> 주석: "선우는 백적의 별종이며 중산 신시현에 있다. 석양은 비국의 수도인데 락평 첨현(沾县, 산서성 진중시 석양현 서채향<西寨乡>)의 동쪽에 석양성이 있다." 또 "비(肥)는 백적이다. 면고는 그 왕이다. 거록 하곡양현(下曲阳县, 하북성 보정시 곡양현<曲阳县>)의 서남쪽에 비루성(肥累城)이 있다."

<후한서·조기전> 주석: "비루는 옛 비자국이다. 한나라 때에 현으로 하였으며 옛 성이 지금의 고성현(藁城县, 하북성 석가장시 고성구<藁城区>) 서쪽에 있는데 진정국(真定国, 서한 종실 후예의 나라. 석가장 장안구 동고성촌<东古城村>)에 속하였다."

<괄지지>: "비루 옛성은 항주 고성현 서쪽 7리에 있다. 춘추시기의 비자국이였고 백적의 별종이다."

비여(肥如)는 비자국(肥子国) 또 비루(肥累)라고 불렀다. 비인(肥人)은 북적(北狄)의 한 갈래인 백적이며 황제의 후예이고 성은 희(姬)씨이다. 초기에 왕옥산(王屋山, 제원시<济源市>)과 중조산(中条山, 산서성 영제시<永济市>) 일대에서 살았다. 서주 시기에 비인들은 고성의 서쪽에 비국을 세운다.

비국은 부근의 선우국, 고국과 연합하여 남쪽의 주나라 제후국들과 대립하였다. 후에 거듭되는 전쟁으로 비국, 고국, 선우국은 선후로 멸망하였다. 비국도 진(晋)국에 의해 멸망하는데 그 유민들은 사처로 흩어지게 된다. 한 갈래는 동쪽으로 산동성의 수국(遂国, 기원전 681년에 멸망)의 옛 땅에 들어가 비자국을 세우는데 바로 지금의 비성(肥城市)이다. 또 다른 한 갈래는 남쪽으로 장강 부근으로 가 성읍을 세우는데 지금의 합비(合肥)이다. 또 다른 갈래는 서쪽으로 지금의 산서성 진중시 석양현(昔阳县)으로 들어가 다시 비자국을 세웠다. 그리고 또 한갈래는 북쪽의 연(燕)나라 경내에 들어가는데 연나라 북쪽에 비자국(서한<西汉> 때에 비여현<肥如县>으로 고쳐 세움)을 세웠는데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卢龙县) 일대이다.

노룡현 교외에 옛 비자국이 있다. 한에서 비여현을 설치하였고 요서군(辽西郡)에 속하였다. 진(西晋), 후위(后魏)에서도 여전히 비여현으로 불리였다. 개황(开皇, 수문제 양견<杨坚>) 때에 노룡현(卢龙县)으로 고치였다.

[o-거-비여후기]

그 중 일부는 계속 북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무순(抚顺)에 이르러 비리국(陴离国, 부여<扶餘>)을 세우며 후에 또 조선반도(한반도)와 일본으로도 이주하였다.

◉ 중산국(中山国)

중산국(하북성 석가장시 평산현<平山县>), 기원전 414년 ~기원전 296년, 성은 희(姬, 또는 자<子>)씨이고 백적이 세운 국가이다. 국토가 연(燕), 조(赵) 두 나라사이에 있으며 융적(戎狄), 선우(鲜虞), 중산(中山) 등 역사적 단계를 거치였다. 중원 국가들과의 전쟁이 잦았고 후에 위(魏)나라 위문후(魏文侯)가 군대를 보내 3년 동안의 고전 끝에 기원전 407년 중산국을 점령하였다. 중산환공(中山桓公)이 다시 나라를 회복하여 국력이 강성하여져 탈수 있는 전차 9천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기원전 296년, 조(赵)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 구유국(仇犹国)

구유국은 기원전 569년에 건립 되였으며 위현(盂县, 산서성 양천시 위현)에 도읍하였다. 중산국(선우국)과 연합한 국가이다. 주(周) 정정왕(贞定王) 십이년(기원전 457년), 지백(智伯, 진<晋>나라 대신)에 의해 멸망하였다.

[o-겨-선우후기,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