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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선-상나라4

고죽국(孤竹国), 묵태씨(墨胎氏) ◉ 고죽국(孤竹国)"고죽"은 "고죽(觚竹)"으로도 적는데 최초로 은허의 갑골문과 상나라 때의 금문에서 보인다. "고(觚)"는 상, 주 시대의 청동기를 말하고 "죽(竹)"은 기록하는데 사용한 죽간, 옥간, 목간 등을 말한다. 갑골 점괘에서 죽씨(竹氏)들에 연관 된 기록이 40여곳이 존재한다. 하남성 안양시(安阳市), 하북성 당산시 란남현(滦南县), 요녕성 객좌현(喀左县) 등에서 고죽국과 연관있는 갑골문, 청동기, 옥문이 출토되였고 또 , , , 등에도 고죽에 관한 기록이 있다. ​고죽국의 왕은 묵태씨(墨胎氏)이며 또 "묵대씨(墨台氏), "묵이씨(墨夷氏)", "묵이씨(默夷氏)", "목이씨(目夷氏)" 등으로도 적었으며 염제(炎帝)의 후손이다.​: "고죽의 옛 성은 평주 노룡현 남쪽 십이리에 있으며 은나라때 .. 2024. 3. 25.
"朝鲜"이란 한자로 기록된 "조선" ◉조선(朝鲜)조선이 최초로 보인것은 이다. 이 책은 춘추시기의 제(齐)나라 관중(管仲, 기원전 723년~기원전 645년)이 쓴것이다. 그 때의 조선은 지금의 요녕성과 하북성이 맞닿은 지경에 있었다. 에도: "조선은 북해의 모퉁이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북해는 지금의 발해이다. : "조선성은 부의 경내에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기자가 봉 받은 곳이다." 명나라때의 영평부(永平府)가 다스리던 곳은 하북성 노룡현(卢龙县)으로 조선성은 가능하게 란하(滦河) 서안에 있었다고 보여진다.[n-댜-조선]​1세기 중엽에 이르러 고조선(위만조선)은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조선이란 이름은 사서에서 사라진다. ​명나라 홍무(명태조 주원장, 1328년~1398년)년간에 이르러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이씨 왕조를 세운후 명나.. 2024. 3. 25.
기자와 기씨조선(箕氏朝鲜) ◉ 주나라가 봉한 국가 및 기씨조선(箕氏朝鲜)주무왕이 제후들을 봉하면서 역시 주(纣)의 아들 무경(武庚)을 은(殷, 하남성 안양시)에 봉하여 조상의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무경은 상나라 마지막 왕 주의 아들로 무경으로 남아있는 은나라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였다.​하지만 무경이 반란을 꾀할까봐 조가(朝歌, 은의 수도)의 주위에 패(邶, 한단), 용(鄘, 하남성 신향시), 위(卫, 하남성 학벽시 기현) 등 세 나라를 두었다. 북쪽에 패나라를 두어 곽숙(霍叔, 주무왕 동생)을 봉하였고 서쪽과 남쪽에 용나라를 두어 채숙(蔡叔, 주무왕 동생)을 봉하였으며 동쪽에 위나라를 두어 관숙(管叔, 주무왕 동생)을 봉하여 무경을 감시하게 하였다.[n-냐-주 봉국]​은이 멸망한지 제 4년, 무왕이 죽고 아들 성왕(成王)이 어려.. 2024. 3. 25.
상 주진(主辰)-은상(殷商) ◉ 상(商), 주진(主辰)알백과 실심은 광림속에 같이 거주하였는데 두 형제 사이가 좋지않아 아버지 제 곡이 알백은 상구로 보내고 실심은 대하로 보내여 두 형제를 따로 살게하였다. 알백을 상구(商丘)로 보냈는데 주진(主辰)이라 하였다. ​​◉ 상탕(商汤): "계(契)현왕이 소명(昭明)을 낳았는데 지석(砥石)에서 살다가 상(商)으로 옮기였다. 십사대에 천을(天乙) 성탕(成汤)이 있었다."​상탕은 성이 자(子)씨이고 이름은 리(履)이다. 무탕(武汤), 천을, 성탕이라고도 부르며 계(契, 알백)의 14대 손이다. 주계(主癸)의 아들이며 상왕조를 세운 인물이다.​갑골문에 "성(成)" 혹은 "당(唐)"으로 기록되였고 또 "대을(大乙)", "천을", "조을(祖乙)"이라고도 기록하였다. 갑골문에는 "탕(汤)"자가 없고.. 2024.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