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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분열-고신씨/한족의 기원-신녀, 반왕

반왕, 신녀와 한족, 한장어족의 기원

by 성수록 2024. 3. 24.

◉반왕절(盘王节)

반왕절은 요족(瑶族)의 명절이다. 매년 음력 십월 십육일로 달노절(达努节), 조낭절(祖娘节), 요년(瑶年)이라 부르기도 한다. 광서, 호남, 운남, 귀주, 강서 등에 거주하는 요족들의 전통 명절이다.

◉반왕전설 첫번째, 한족(汉族), 장족(壮族), 요족(瑶族)

달노절의 기원은 이러하다. 천지가 혼탁한 태고시기에 뭇산중에 높이가 같은 보산(宝山)이 서로 마주 보며 솟아있었다. 웅장한 남자같은 좌측 산은 포락서산(布洛西山)이라 불렀고 치마 입은 여자같은 우측 산은 밀락타산(密洛陀山)이라 불렀다. 두 산이 매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거의 맞닿을 무렵의 어느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두 산이 동시에 쪼개지며 포락서산에서 남자가 밀락타산에서 여자가 걸어나왔다. 후에 이들 둘은 결혼하여 부부가 되였고 남편는 포락서, 아내는 밀락타라고 불렀다.

그들이 세상을 창조한후 세 딸을 낳아 키웠는데 그들이 자라 부모곁을 떠나 자립하게 되였다. 큰 딸은 쟁기와 써레를 가지고 평원으로 가 밭일을 하며 살았는데 이들이 한족의 조상으로 되였고 둘째 딸은 책 한보따리를 싸들고 가 책 읽는데 전념하였는데 이들이 장족의 조상이 되였고 셋째 딸은 종자와 꽹과리를 가지고 산으로 가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았는데 이들이 요족의 조상이 되였다.

밀락타가 늙어 거동이 불편하자 세딸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당부하였다: "십월 십육일은 나의 생일이니 매년 그 날이 되면 너희들이 나한테 쌀을 가져다 주렴." 그리고 셋째 딸한테: "너희는 풍요롭지 않으니 쌀로 빚은 술을 갖고와 모두를 맛보게 하고 하루 먼저 와서 꽹과리로 흥을 돋구어 주어라."라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요족들은 그 날을 반왕절로 기념하였고 십오일에 시작하여 십칠일에 마무리짓는 풍속이 생기였다.

◉반왕전설 두번째, 반호(盘瓠), 반왕

옛날 고왕(高王)이 침범하여 평왕(平王)이: "누가 고왕의 머리를 잘라 바치면 공주를 그한테 주리라."라고 방을 붙혔다. 이것을 용견(龙犬) 반호가 듣게되였고 반호는 고왕한테 가 그의 신임을 얻은후 고왕이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 머리를 물어뜯어 평왕한테 와서 바쳤다. 이 공로로 셋째 공주를 아내로 삼았다. 반호가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 아내한테 칠일동안 삶으라고 알려준뒤 시루안에 들어갔다. 육일에 공주가 의심이 들어 시루두껑을 열었는데 사람으로 변한 반호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부족하여 아직 머리와 종아리에 털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하여 천으로 머리와 종아리를 감싸게 되였다.

반호가 사람으로 된후 평왕은 그를 회계산(会稽山)으로 보내 왕으로 되게 하였는데 반왕이라 불렀다. 반왕과 공주는 육남, 육녀를 두었는데 이들이 요족의 열두 성씨이다. 어느 하루 반왕이 아들들과 같이 사냥을 하였는데 산양이 들이 받아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였고 시체는 나무에 걸렸다. 반왕의 딸들이 그 나무를 잘라 북체를 만들고 양가죽을 벗겨 씌워 장고(长鼓)를 만들어 장고를 치며 곡 하고 노래 불러 반왕을 애도하였다.

◉기타 반호전설, 신녀(辛女)

제 곡(喾) 고신씨(高辛氏) 시기에 전쟁이나 반란이 적었다. 그러나 아내 상의(常仪)와 딸 제녀(帝女)를 데리고 남방을 순행할때 운몽대택(云梦大泽, 호북성 강한평원<江汉平原>에 있던 옛 늪)에서 방왕(房王)의 난을 만났다. 제녀가 반호라는 신령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적 진영으로 들어가 방왕을 물어죽이고 난을 평정하였다. 제 곡이 제녀를 반호한테 아내로 맺어주니 십이남과 십이녀를 낳아 남방 각지에 흩어져 살게 하였다.

<현중기>: " 제 고신씨가 시집가지 않은 아릿다운 딸이 있었다. 견융(犬戎)이 난을 일으키니 제가 말하길 '토벌하는 자가 있으면 딸을 아내로 주고 삼백호로 봉하리라.' 반호(盘护)라는 개가 있어 삼월에 견융을 죽이고 머리를 가져오니 제가 백성들에게 가르침이 되고저 딸을 아내로 주어 회계의 땅 삼천리에 봉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개가 되고 딸을 낳으면 미녀가 되니 구민국(狗民国)이라 하였다. 옛날의 량(梁), 한(汉), 파(巴), 촉(蜀), 무릉(武陵), 장사(长沙), 려강(庐江) 등 군, 현의 이인(夷人)들이 물고기를 으깨넣은 음식을 먹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산가(山歌)를 불러 반호를 제사지내는데 이 풍속은 지금도 여전하다. 때문에 세인들이 '허벅지를 드러내고 치마를 둘렀으면 반호의 자손이다'라고 한다."

<수신기>: "고신씨 시기에 왕궁에 늙은 부인이 있었는데 귀를 앓고 있었는데 의사가 와서 귀를 파보니 딱정벌레 한마리가 나왔다. 의사가 벌레를 표주박속에 넣은후 쟁반으로 덮어 놓았고 나중에 열어보니 딱정벌레처럼 알록달록한 털을 가진 개로 변해있었다. 의사는 그 개를 반호라 이름짓고 키웠다. 그 당시 융오(戎吴)부락이 강성해져 수차례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고신씨가 군대를 보내 토벌하였지만 평정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에 '누가 융오 우두머리의 수급을 가져오면 금 천냥을 상으로 주고 성읍 천호를 나누어 봉하여 주며 딸을 아내로 내려줄것이다.' 라는 방을 써붙혔다.

후에 반호가 사람 머리 하나를 물어다 왕궁앞에 가져왔는데 왕 고신씨가 보니 융오 우두머리의 머리였다. 왕이 대신들에게 물었지만 대신들은 반호가 짐승이므로 될수없는 일이라고 말리였다. 이때 막내 공주가 이 일을 알고 나와 '부왕이 천하에 내린 언약이고 반호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으므로 만약 지키지 않으면 세상이 부왕을 믿지 않을것입니다.'라고 여쭈니 그 말을 옳게 여겨 막내 공주를 반호한테 시집보내였다.

반호가 공주를 데리고 심산 속의 동굴로 데려가 살면서 육남, 육녀를 낳았다. 반호가 죽고 아들, 딸들이 서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였는데 반호를 기리여 알록달록한 복장을 하였고 복장에는 꼬리가 달려있었다.

시간이 흘러 국왕이 사신을 보내 이들을 맞아오게 하였는데 이들이 입은 옷들의 색채가 찬란하고 말을 하면 모호하여 알아 듣기 힘들고 음식을 항상 쭈그려 앉아 먹으며 도시를 싫어하고 산과 들을 좋아하였다. 왕이 그들의 뜻을 존중해 산과 늪이 많은 땅을 하사해주니 그들을 만이(蛮夷)라고 불렀다. ... ... ... 지금의 량주(梁州), 한중군(汉中郡), 파군(巴郡), 촉군(蜀郡), 무릉군(武陵郡), 장사군(长沙郡), 려강군(庐江郡) 의 만이가 이들이다. 이들은 쌀밥에 물고기, 고기를 섞고 북을 치며 소리지르는데 이런 방식으로 반호를 제사지낸다. 이 풍속은 지금도 여전하며 사람들은 '넙적다리를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둘렀으면 반호의 자손이다.'라고 한다."

반호, 반왕은 남방의 요, 묘(苗), 려(黎)족들 속에서 광범위하게 내려오는 전설이다. 로계현 백사진 신녀촌(辛女村, 侯家村) 일대에는 반호동, 반호묘, 신녀(辛女, 고신씨의 딸)암, 신녀묘 등 반호와 신녀에 대한 지명이 많이 있다.

[k-뱌-반호 후예,묘,요]

◉한족의 유전자

독용족(独龙族), 노족(怒族), 경파족(景颇族) 등은 모두 비슷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독용족의 전설에 의하면 하늘의 큰 신 알미(嘎美)와 알사(嘎莎)가 진흙을 이겨 일남, 일녀를 만들었는데 남자는 보(普), 여자는 모(姆)라 불렀다. 대홍수 이후 이들은 결혼하여 구남, 구녀를 낳았는데 세번째 아들과 세번째 딸은 결혼하여 본래 지방에 남아 독용족으로 되였고 큰 아들과 큰 딸이 결혼하여 한족이 되여 떠나갔고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이 결혼하여 노족으로 되였다. 기타 형제들도 율속족(傈僳), 장족(藏), 백족(白), 납서족(纳西) 등으로 되였다.

O3—m122는 한족(汉族)의 유전자라고 부르는데 이 유전자는 운남으로부터 중국대륙에 들어왔으며 운귀(云贵)고원에서 백복(百濮) 민족을 형성하였다. 독용족, 이족(彝族), 경파족, 납서족, 율속족, 백족, 합니족(哈尼族), 랍호족(拉祜族), 보미족(普米族), 노족, 아창족(阿昌族)등이 백복에 속하며 이들은 한장어계(汉藏语系)에 속한 민족들이다. O3—M122유전자가 제일 높이 나타나는 곳은 중국의 운남성 지구와 인도의 나가란방(那加兰邦)의 토착민들인데 이곳의 독용족을 포함한 많은 민족들이 100%에 가까운 출현율을 보였다. 그리고 황하유역의 하북, 섬서, 산동과 장강유역의 호북, 안휘, 사천, 강서 등 지구의 한족들도 80%가 넘는 출현율을 보였다.

동남아에서는 태국과 캄보디아가 조금 적게 포함되여 있는 외 기타 지구에서는 50%가 넘는 출현율을 보였는데 중국 운남지구로부터 남쪽으로 가면서 차츰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였다. 인도네시아의 자바인에 이르러서는 20%의 출현율을 보였으며 통가, 뉴질랜드의 마오리인 등은 비교적 적은 출현율로 나타났다.

북아시아에서는 몽골인이 30%, 아무르인이 40%를 넘기였으며 한국인(조선인)도 비슷한 출현율을 보이였다. 일본인은 22%의 출현율을 보였으며 이들 외에는 아주 희박한 출현율을 보였는데 에스키모인과 부랴트인들 한테서는 0%의 출현율을 보였다.

[k-버-O3—m122유전자,독룡족]

◉한나라(汉朝)

기원전 202년에 시작하여 220년에 끝났다. 진나라이후의 통일 왕조이며 서한, 동한 시기로 나뉜다.

서한

진 2세 원년(기원전 209년), 농민봉기가 폭발하고 유방(刘邦)도 패현(沛县, 강소성 서주시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후에 항(项)씨 숙질의 반군에 가입하였다. 항량(项梁)이 웅심(熊心)을 초회왕(楚怀王)으로 세우고 민심을 달래였다.

기원전 208년, 초회왕이 도읍을 팽성(彭城, 강소성 서주<徐州>)으로 옮기고 유방을 무안후로 봉하였고 탕군(砀郡, 영성시<永城市> 산성집)의 군장을 맡게 하였으며 탕군의 병사를 거느리게 하였다.

기원전 207년, 류방은 팽성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함양을 공격해 진나라 왕 자영(子婴)의 투항을 받으므로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기원전 206년, 항우(项羽)가 유방을 한왕(汉王)으로 봉하였으나 나중에 항우와 유방은 4년에 거치는 촉(楚)과 한(汉)의 전쟁을 치른다. 해하(垓下, 안휘성 숙주시<宿州市>)의 전투에서 항우가 패한다.

기원전 202년, 정도(定陶, 하택시 정도구)에서 황제로 된후 나라 이름을 한(汉)으로 하고 수도를 장안( 섬서성 서안시)에 정하였다.

6년, 왕망(王莽)이 년호를 거섭(居摄)으로 하고 두살밖에 안된 유영(刘婴)을 황태자로 세웠다. 8년 왕망은 황제로 칭하며 천자자리에 올랐고 국호를 신(新)으로 하니 서한은 멸망하였다.

유방(刘邦)

유방은 한나라의 개국 황제로 기원전 202년 2월 28일~기원전 195년 6월 1일까지 재위하였다.

요(尧)의 큰아들 감명(监明)이 유읍(刘邑, 하북성 당현<唐县>)에 봉하여졌고 그 후대들이 이어받았는데 차츰 읍명을 성씨로 하였고 하나라 유루(刘累)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유방의 아버지대에 이르러서는 농사를 하는 평민으로 되였다.

유루(刘累)

요의 후손인데 어릴때 환용씨(豢龙氏)한테서 용을 키우는 기술을 배웠다. 하나라 공갑(孔甲) 때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는데 공갑이 유루를 보내 키우게 하였다. 초기에는 용을 키우는데 공이 있어 공갑은 유루를 시위국(豕韦国) 군장을 대행하게 하였다. 후에 암컷 용이 죽었는데 유루가 그것을 요리로 만들어 공갑을 대접하였고 맛있게 먹은 공갑이 더 보내줄것을 요구하자 도망쳐 하남성 로산현(鲁山县)에 구공(丘公)으로 개명한후 은거하여 살았다. 공갑이 알고 그 죄를 묻지않으니 다시 유루로 고쳤는데 이것이 유(刘)씨 성의 기원으로 되였다.

동한

왕망이 신(新)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다 거기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드디어 록림적미봉기(绿林赤眉起义)가 일어났다. 종실이였던 유수(刘秀)가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키고 이어 한(汉)을 국호로 하니 이것을 동한이라고 한다. 동한은 25년~ 220년까지 계속되였고 서한과 더불어 량한이라고 한다.

◉한중(汉中), 한수(汉水)

서한의 개국황제 유방이 제위하기 전에 봉하여졌던 곳이 한중(섬서성 한중시<汉中市>)이였고 때문에 한왕이라고 하였다. 후에 한고조(汉高祖) 유방이 천하를 얻은후 국호를 여전히 한(汉)으로 하였다. 한중은 한수때문에 붙혀진 이름이고 한문화와 한이란 이름도 응당 여기서 나온것이다.